스스로 회복하는 실리콘 — RCT Space 궤도상 어닐링이 바꾸는 EOL 전력 셈법

우주용 결정질 실리콘 태양전지가 궤도상 방사선 어닐링으로 수명 말기 출력을 회복하는 개념을 표현한 RCT Space 커버 이미지

ISSUE 2026 · W27 | 우주 전력·에너지 시스템

저궤도(LEO, Low Earth Orbit) 위성 성좌가 수천 기 단위로 늘어나면서, 궤도 위 태양전지는 더 이상 소수 고급 위성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켜 온 것은 갈륨비소(GaAs) 계열 3중접합 셀이다. 방사선에 강하고 효율이 높지만, 공급처가 좁고 원소 자체가 귀하다. 2026년 6월 24일, 독일의 RCT Group이 우주용 결정질 실리콘 태양전지 자회사 RCT Space를 출범시키며 “궤도상 방사선 어닐링(in-flight radiation annealing)” 특허를 내걸었다. 실리콘은 극한 환경의 방사선 앞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소재로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궤도에서 스스로 상처를 회복하는 실리콘은, 위성 전력 설계의 출발점인 EOL(End of Life, 수명 말기) 전력을 어떻게 바꾸는가.

무엇이 발표됐나 — 실리콘으로 갈륨비소의 궤도를 겨냥하다

태양광 전문지 pv magazine의 6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RCT Group은 우주용 결정질 실리콘 셀과 모듈을 개발·공급하는 자회사 RCT Space를 새로 세웠다. 주력 고객으로는 저궤도 성좌 운용사와 각국 우주 프로그램을 지목했고, 유럽우주표준협력기구(ECSS, European Cooperation for Space Standardization) 요구조건에 따른 인증을 약 18개월 로드맵으로 마친 뒤 2027년 첫 상업 납품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핵심은 특허로 보호된다는 궤도상 방사선 어닐링 기술이다. RCT Space의 최고기술책임자(CTO) 볼프강 요스(Wolfgang Jooss)는 “우리의 궤도상 방사선 어닐링 IP가 오늘날 갈륨비소의 영역인 임무에서 실리콘을 쓸 수 있게 만든다”고 말했다. 회사는 팀원들이 이전 우주 공학 경력에서 비행 이력(flight heritage)을 쌓았다고 밝혔다.

다만 공개된 정보에는 결정적인 숫자가 빠져 있다. 셀의 AM0(대기권 밖 태양 스펙트럼) 변환효율, 셀 두께와 면적당 질량, 어닐링을 일으키는 방식(가열인지 전류 주입인지)과 조건, 어닐링 후 회복률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이 글은 그 빈칸을 추정으로 채우지 않고, 빈칸이 설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따라간다.

왜 우주에서 실리콘은 밀려났나

궤도의 태양전지는 태양빛만 받는 것이 아니다. 밴앨런대에 갇힌 양성자와 전자, 태양 입자 사건(SPE, Solar Particle Event) 때 쏟아지는 고에너지 양성자가 반도체 결정 격자의 원자를 밀어내 변위 손상(displacement damage)을 만든다. 이 결함은 빛으로 생긴 전하 운반자를 붙잡아 재결합시키고, 소수 운반자 확산 길이가 줄어들면서 전류가 떨어진다. 두꺼운 흡수층 깊숙이에서 생긴 전하를 멀리 끌어와야 하는 결정질 실리콘은 이 손상에 특히 민감한 구조다.

반면 3중접합 GaAs 계열 셀은 직접 천이형 흡수층이 얇아 운반자가 짧은 거리만 이동하면 되고, 초기 효율 자체가 높다. 일반적으로 우주용 3중접합 셀의 AM0 효율은 30% 안팎, 우주용 실리콘은 10%대 중후반으로 알려져 있다(본 글의 일반값이며 RCT Space 제품 수치가 아니다). 효율 차이와 방사선 열화 차이가 겹치면서, 실리콘은 1990년대 이후 고신뢰 위성에서 점차 밀려났다.

그런데 결함이 영구적이지 않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반도체의 일부 방사선 결함은 열에너지나 운반자 주입에 의해 재배열되거나 소멸한다. 지상 실험실에서 조사 후 가열로 성능이 회복되는 현상은 오래 알려져 왔다. RCT Space가 내건 것은 이 회복을 궤도 위에서, 운용 중에 일으키는 기술이다. 어떤 결함이 얼마나 회복되는지가 이 기술의 가치를 결정한다.

EOL 전력은 단조 감소에서 톱니형으로 바뀐다 (개념도, 가정값)임무 경과 (0 → 5년, 가정)출력 잔존율1.000.900.75파랑: 주기적 궤도상 어닐링회색: 어닐링 없음 (단조 열화)설계 기준은 톱니의 골(최저점) — 회복률은 미공개

그림 1. 궤도상 어닐링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출력 잔존율 개념도. 0.75와 0.90은 설명을 위한 가정값이며 RCT Space가 공개한 수치가 아니다.

EOL이 태양전지판 면적을 정한다

위성 전력계 설계는 수명 초기(BOL, Beginning of Life)가 아니라 수명 말기에 필요한 전력에서 거꾸로 출발한다. 방사선·자외선·열 순환으로 깎일 몫을 미리 얹어 BOL 어레이를 크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EOL에 1,000 W가 필요하고 5년 뒤 출력 잔존율이 0.75라고 가정하면 BOL 어레이는 약 1,333 W가 돼야 한다. 같은 조건에서 어닐링으로 잔존율을 0.9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BOL은 약 1,111 W로 줄어든다. 면적으로 약 17%의 차이다.

이 숫자를 면적으로 옮겨 보면 한계도 함께 보인다. AM0 조도 1,361 W/m², 셀 효율 16%, 패킹 계수 0.85를 가정하면 실리콘 어레이의 면적당 출력은 약 185 W/m²다. 어닐링이 있는 실리콘은 약 6.0 m², 없는 실리콘은 약 7.2 m²가 필요하다. 반면 효율 30%, 잔존율 0.88을 가정한 3중접합 어레이는 약 3.3 m²면 된다. 즉 어닐링은 실리콘과 실리콘 사이의 격차를 줄일 뿐, 실리콘과 갈륨비소 사이의 면적 격차를 지우지는 못한다.

항목3중접합 GaAs 계열기존 우주용 실리콘실리콘 + 궤도상 어닐링(RCT Space 주장)
AM0 효율(일반값)약 30% 안팎10%대 중후반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음
방사선 열화 대응얇은 흡수층, 커버글라스 차폐BOL 과잉 설계로 흡수궤도에서 결함 회복 — 회복률 미공개
EOL 1,000 W용 면적(가정 계산)약 3.3 m²약 7.2 m²약 6.0 m²
재료 공급갈륨·게르마늄 등 핵심광물 의존지상 태양광 공급망과 공유지상 공급망 활용 + 인증 18개월 계획
인증·일정다수 비행 이력과거 비행 이력ECSS 인증 후 2027년 납품 계획

표가 보여 주는 것은 궤도상 어닐링이 “효율 경쟁”이 아니라 “열화 곡선 경쟁”에 대한 답이라는 점이다. 면적당 출력에서 실리콘은 여전히 뒤지므로, 이 기술이 의미를 가지려면 면적당 질량과 공급 안정성에서 그 차이를 메워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의 핵심 변수인 효율과 회복률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지상의 재생 공정, 궤도의 자가 회복

지상 현황. 지상 결정질 실리콘 산업은 이미 “열화된 셀을 되살리는” 공정에 익숙하다. 빛이나 열로 유발되는 열화를 줄이기 위해 공장에서 셀을 가열하면서 빛이나 전류를 주입해 결함 상태를 안정화하는 재생(regeneration) 공정이 널리 쓰인다. 이 환경은 1기압, 상온, 대류 냉각이 가능한 조건이고, 필요한 에너지는 공장 전력망에서 온다.

우주 적용 시 변화. 궤도에서는 열화의 원인이 빛이 아니라 입자 방사선이고, 결함의 종류와 밀도가 다르다. 어레이는 고진공(10⁻⁶ Torr 이하 수준)에서 대류 없이 복사로만 열을 주고받으며, 저궤도에서는 대략 90분마다 일식 구간을 지나며 수십 K 폭의 온도 순환을 겪는다. 무엇보다 결함 회복에 쓸 열이나 전류를 공급할 전력망이 없다. 필요한 에너지는 그 어레이 자신, 또는 배터리에서 나와야 한다.

연결 원리. 두 환경을 잇는 원리는 같다. 결함 상태를 바꾸려면 에너지를 주입해야 한다. 차이는 그 에너지의 출처와 가격이다. 지상에서는 공정 비용이지만, 궤도에서는 위성 전력 예산의 한 항목이 된다. 궤도상 어닐링을 평가할 때 회복률만큼이나 “회복에 드는 에너지와 시간”을 물어야 하는 이유다.

전력·에너지 관점

Point. 궤도상 어닐링은 태양전지의 EOL을 일방향 상수에서 조절 가능한 상태 변수로 바꾼다. 이는 질량 여유(과잉 설계된 어레이 면적)를 에너지·운영 여유(주기적 회복 작업)로 환전하는 기술이다.

Reason. 기존 설계에서 방사선 열화는 BOL 면적을 키워 한 번에 지불하는 비용이었다. 어닐링이 가능하면 그 비용의 일부를 수명 동안 나눠서, 전력과 가동 시간으로 지불하게 된다. 이때 설계 기준은 BOL/EOL 비율이 아니라 그림 1의 톱니에서 “어닐링 직전 골”이 된다. 골이 얼마나 깊어지는지는 궤도 방사선 환경과 어닐링 주기가 함께 결정한다.

Example. 어닐링을 위해 연 1회, 궤도 1주기(약 95분) 동안 어레이 출력의 20%를 포기해야 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발전량 손실은 약 0.004%로 무시할 만하다. 그러나 같은 작업을 일식 중에 배터리 전력으로 가열해 수행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에너지는 배터리 방전 심도(DoD)를 추가로 끌어올리고, 저궤도 위성이 연간 약 5,500회 겪는 충방전 사이클의 수명 계산에 직접 들어간다. 어닐링 에너지의 출처가 “낮의 잉여 전력”인지 “밤의 저장 전력”인지에 따라 같은 기술의 비용이 수백 배 달라질 수 있다.

Point. 따라서 RCT Space의 주장이 실현되더라도, 위성 설계자가 받는 것은 공짜 전력이 아니라 새로운 조절 손잡이다. 그 손잡이의 가치는 회복률 × 회복 주기 ÷ 회복 에너지로 평가해야 하며, 이 세 값이 공개될 때 비로소 갈륨비소 대비 위치가 정해진다.

반론과 제약.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야 한다. 대형 태양 입자 사건 한 번이 수년치 양성자 플루언스를 며칠 만에 쏟아부으면, 어닐링으로 회복되지 않는 안정 결함 복합체가 누적될 수 있다. 또 어닐링을 반복할수록 셀 인터커넥트와 접합부는 추가 열 순환을 겪는다. 회복률이 기대보다 낮으면 어레이를 다시 키워야 하고, 저궤도에서 면적 증가는 대기 항력 증가 → 궤도 유지 추진제·추진 전력 증가 → 어레이 추가 증가 → 질량 증가 → 발사 비용 증가라는 순환으로 되돌아온다. 실리콘의 넓은 면적 자체가 저궤도에서는 항력이라는 숨은 비용이다.

지상 시험과 우주 환경의 괴리. 지상 방사선 시험은 단일 에너지 양성자·전자를 높은 선속으로 짧은 시간에 조사하고, 등가 플루언스 개념으로 궤도 환경을 환산한다. 실제 궤도는 넓은 에너지 스펙트럼이 낮은 선속으로 수년에 걸쳐 들어오며, 그 사이 셀은 계속 온도 순환을 겪는다. 선속 차이와 온도 이력 차이 때문에 지상에서 확인한 어닐링 회복률을 궤도 회복률로 확언할 수 없다. ECSS 인증 과정이 이 괴리를 얼마나 좁히는지, 그리고 궤도 실증 데이터가 언제 나오는지가 다음 확인 지점이다.

경계 조건(BC) 주석. (1) 면적 계산은 AM0 1,361 W/m², 수직 입사, 셀 온도 효과 무시, 패킹 계수 0.85를 가정했다. (2) 셀 효율 16%(실리콘)·30%(3중접합), 5년 잔존율 0.75(어닐링 없음)·0.90(어닐링)·0.88(3중접합)은 모두 설명용 가정값이며 RCT Space의 공개 수치가 아니다. (3) 연간 충방전 횟수는 공전 주기 약 95분의 저궤도를 가정해 산출했다. (4) 어닐링 방식(가열/전류 주입), 조건, 소요 에너지, 회복률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아 계산에 넣지 않았다. (5) 궤도 온도 순환 폭과 진공도는 일반적인 저궤도 환경의 대략적 범위다.

요약 항목내용
사건2026-06-24 RCT Group, 우주용 결정질 실리콘 셀·모듈 자회사 RCT Space 출범
핵심 제원궤도상 방사선 어닐링 특허, 저궤도 성좌·국가 프로그램 대상, ECSS 인증 약 18개월, 2027년 첫 납품 계획
핵심 통찰어닐링은 EOL을 상수에서 상태 변수로 바꾸며, 질량 여유를 에너지·운영 여유로 환전한다
숨은 제약면적당 출력은 여전히 3중접합 대비 열세 — 저궤도에서 넓은 면적은 항력과 추진 전력으로 되돌아온다
확인 필요AM0 효율, 면적당 질량, 어닐링 방식·에너지·회복률, 궤도 실증 일정

정리하면, 궤도에서 스스로 회복하는 실리콘은 전력계에 새 손잡이를 달아 주지만 그 손잡이를 돌리는 데 드는 에너지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갈륨비소의 대체재가 아니라 후보에 머문다.

본 글은 pv magazine이 보도한 RCT Group·RCT Space의 공개 발표 내용을 근거로 작성했다. 가정값은 본문에 명시했으며, 확인되지 않은 항목은 추정하지 않고 “확인 필요”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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