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개의 조합에서 40번 만에: AI가 찾아낸 로켓엔진 합금의 저전력 프린팅 레시피

AI 실험설계로 GRCop-42 합금을 저전력 3D프린팅하는 개념도

액체로켓 연소실 안쪽 벽은 초당 수백 켈빈(K)의 열유속을 견디면서도 형상을 유지해야 하는, 재료공학에서 가장 가혹한 환경 중 하나다. NASA가 이 환경을 위해 개발한 구리-크롬-니오븀 합금 GRCop-42는 뛰어난 열전도성과 고온 강도를 겸비하지만, 정작 이 합금을 3D프린팅으로 성형하는 일은 오랫동안 소수의 초고출력 산업용 프린터를 보유한 곳만 가능한 영역이었다. 그런데 2026년 8월, 워싱턴주립대(WSU) 연구팀이 인공지능을 동원해 이 벽을 허물었다. 1억 개가 넘는 가능한 공정 조합 중 단 40번의 실험만으로, 500와트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레이저 출력에서도 안정적으로 프린팅되는 여섯 가지 조합을 찾아낸 것이다.

90%의 프린터가 찍어내지 못하는 합금

GRCop-42는 열전도도가 높다는 바로 그 특성 때문에 적층제조(additive manufacturing)에서 다루기가 까다롭다. 레이저가 쏘아낸 열이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나가 버리기 때문에, 분말을 완전히 용융시켜 층층이 쌓으려면 일반적인 티타늄·스틸 합금보다 훨씬 높은 레이저 출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상용 3D프린터의 약 90%는 GRCop-42를 아예 프린팅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합금 하나를 시험 출력하는 데 드는 비용도 수백 달러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GRCop-42 활용은 대형 항공우주 기업이나 정부 연구소가 보유한 고출력 산업용 설비로 제한되어 왔다.

워싱턴주립대 연구팀이 마주한 질문은 단순했다. 레이저 파워, 스캔 속도, 해치 간격, 분말층 두께 등 3D프린팅 공정 변수의 조합은 이론적으로 1억 가지가 넘는데, 이 광대한 조합 공간에서 저출력으로도 성공하는 지점을 사람이 일일이 실험해 찾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연구팀은 AI 기반 적응형 실험설계(adaptive experimental design) 기법을 도입했다. AI가 이전 실험 결과를 학습해 다음으로 시도할 가장 유망한 조합을 스스로 제안하는 방식이다.

AI 적응형 실험설계: 1억 조합 → 40회 실험 → 6개 저출력 레시피공정변수 조합공간10⁸AI 적응형실험설계40회 실험성공 레시피6개 확보최저 500W

레이저 출력이 낮아진다는 것의 진짜 의미

연구팀이 3개월, 40회 실험이라는 예산 안에서 찾아낸 여섯 가지 성공 조합 중 하나는 500와트라는, 기존 통념보다 훨씬 낮은 레이저 출력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이는 단순히 “전기요금을 아낀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출력에서도 프린팅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GRCop-42를 다루는 데 필요한 프린터 자체의 등급이 낮아진다는 뜻이며 이는 곧 대학 연구실이나 중소 규모 제조업체가 보유한 상용 장비로도 로켓엔진급 합금 부품을 시험 제작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연구팀이 이번 성과를 “합금 제조의 민주화(democratize)”라고 표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GRCop-42 합금 3D프린팅에 필요한 레이저 출력을 기존 고출력 공정과 AI 탐색 저출력 공정으로 비교한 막대 그래프
500W까지 낮아진 레이저 출력은 장비 등급을 낮춰 로켓엔진 합금 프린팅의 진입장벽을 허문다.

전력 소비량 감소는 부수적 효과도 낳는다. 고출력 레이저를 장시간 가동할 때 발생하는 장비 마모와 후가공 비용도 함께 줄어드는데, 이는 GRCop-42 활용의 진입장벽이던 “회당 수백 달러” 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낮출 잠재력을 갖는다. 다만 이 성과가 로켓엔진 연소실처럼 극한의 신뢰성이 요구되는 실제 비행 부품에 곧바로 적용되려면, 저출력으로 프린팅된 부품의 미세조직·기계적 물성이 기존 고출력 공정 결과물과 동등한 수준인지에 대한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구분 기존 고출력 프린팅 공정 AI 탐색 저출력 공정(WSU, 2026)
필요 레이저 출력 고출력 산업용 설비 수준(상용 프린터 90% 프린팅 불가) 최저 500W까지 확인(발표치)
공정 조건 탐색 방식 수작업 시행착오 AI 적응형 실험설계, 1억 조합 중 40회 실험
접근 가능 장비 대형 항공우주 기업·정부 연구소 보유 설비 대학 연구실·중소 제조업체 상용 프린터로 확대 가능
단위 시험 비용 수백 달러대(고에너지·고장비 등급 소요) 레이저 출력 저감으로 절감 잠재력(정량 수치 미공개)

이 비교표의 시사점은 명확하다. GRCop-42라는 소재 자체는 바뀌지 않았지만, AI가 공정 변수 탐색이라는 병목을 해소하면서 이 소재에 접근할 수 있는 제조 주체의 범위가 극적으로 넓어졌다. 로켓엔진 합금 제조는 더 이상 소수 대기업의 전유물로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전력·에너지 관점

우주소재 제조의 진짜 병목은 소재 조성 자체가 아니라 그 소재를 성형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문턱이다. GRCop-42의 화학 조성은 NASA가 이미 오래전 확정한 것이지만, 이를 실제 부품으로 구현하는 공정의 에너지 요구 수준이 접근 가능성을 결정해 왔다.

그 이유는 적층제조에서 레이저 출력이 곧 설비 등급, 장비 비용, 전력 인프라 요구 수준을 통째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고출력 프린팅 설비는 그 자체로 대용량 전력 공급과 정밀한 열관리 인프라를 요구하며, 이는 결국 GRCop-42 활용을 대형 시설로 제한하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해 왔다. AI가 저출력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공정 조합을 찾아냈다는 것은, 이 에너지 문턱 자체를 낮춤으로써 제조 생태계의 저변을 넓혔다는 뜻이다. 소형 우주기업이나 대학이 로켓엔진 연소실 시제품을 자체 제작해 검증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신생 발사체 스타트업의 개발 주기 전체를 단축시키는 시스템적 파급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낙관에는 제약이 따른다. 저출력 공정으로 제작된 부품이 실제 로켓엔진의 반복 열주기·고압 연소 환경에서 기존 고출력 공정 부품과 동등한 피로수명을 보이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지상 실험실의 단발성 프린팅 성공과, 수십~수백 회의 재점화를 견뎌야 하는 실제 비행용 연소실의 신뢰성 사이에는 여전히 별도의 검증 단계가 남아 있다.

경계조건 및 확인 필요 항목: 본 연구는 지상 대기압·상온 환경의 3D프린팅 챔버(통상 아르곤 등 불활성 가스 분위기)에서 수행된 공정 최적화 실험이며, 프린팅된 부품이 실제 로켓엔진 연소실처럼 고온·고압·반복 열주기 환경에서 보이는 기계적 물성(피로강도, 미세조직 안정성)은 별도 검증이 필요한 확인 필요 항목이다. 여섯 가지 성공 조합 각각의 정확한 레이저 출력·스캔 속도·기공률(porosity) 수치는 원 논문(arXiv 2601.17587) 확인이 필요하며, 500W가 여섯 조합 중 최저값인지 대표값인지도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항목 내용
연구 주체 워싱턴주립대(WSU) 연구팀
대상 소재 NASA 로켓엔진 합금 GRCop-42(구리-크롬-니오븀)
성과 1억+ 공정조합 중 40회 실험으로 6개 성공 레시피 확보, 최저 500W 프린팅
전력 관점 통찰 소재 접근성을 결정하는 것은 조성이 아니라 성형 공정의 에너지 문턱
발표 시점 2026년 8월(WSU 발표 8/24, ScienceDaily 보도 8/27)

본 글은 워싱턴주립대의 2026년 8월 발표 자료 및 관련 언론 보도, arXiv 사전공개 논문(2601.17587)을 근거로 작성한 기술 해설이며, 실제 비행 부품 적용을 위한 신뢰성 검증은 별도 절차를 거쳐야 함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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